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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편견을 매력으로 바꾸는 법유리공예가 양유완

“유리공예를 하려면 힘부터 기르라”는 어느 거장의 말에 “내가 가진 여성성이 곧 나의 힘”이라고 응수하는 사람. 자신의 작업 도구를 사람의 장기에 빗대어 설명하는 남다른 감성의 소유자. 다 떠나서 그냥 멋진 작가. 양유완을 만났다.





Q. 갤러리와 편집숍에서 당신의 이름을 자주 접했어요. ‘나만 아는 작가’라고 생각하고 오래 좋아했는데 알고 보니 주변에 팬이 많더라고요.(웃음)
A. 감사합니다. 사람 만나는 걸 워낙 좋아해서 SNS로 대중과 자주 소통하는 편이에요.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것 외에 작가와 일반인을 대상으로 유리공예 수업도 진행하고 있고요.

Q. 브랜드 이름 ‘모와니Mowani’는 무슨 뜻인가요?
A. 유학할 때 사람들이 저를 ‘와니’라고 부르곤 했는데요. 다양한 모양의 작업을 한다는 의미에서 호칭 앞에 ‘모양 모(貌)’자를 붙여봤어요. 다들 라틴어에서 따온 줄 아는데 그렇게 거창한 이름은 아니에요.(웃음)

Q. 산업디자인을 공부한 걸로 알아요. 어쩌다 유리공예 작가가 되었나요?
A. 원래는 조명에 관심이 많았어요. 산업디자인을 택한 건 자동차 헤드라이트 디자인을 공부하고 싶어서였죠. 그러다 졸업 전시를 준비하면서 우연히 유리공예를 접하게 되었는데 산업디자인과는 완전히 다른 매력이 있더라고요. 산업디자인이 ±0.05mm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영역이라면 유리공예에서는 그런 오차가 오히려 작가의 의도로 읽히는 일이 많았어요. 우연한 실수가 예술이 되기도 하는, 그래서 온전히 내가 주인공이라는 생각이 드는 작업이었죠. 결국 전공을 바꾸고 학교를 1년 넘게 더 다녔어요.

Q. 당신 작업의 매력으로 많은 이들이 ‘비정형성’을 꼽아요. 살짝 찌그러진 모양이 오히려 손맛을 돋운다고 할까요? 보통은 제거하기 마련인 기포를 반대로 강조한 것도 근사하고요.
A. 외국에 나가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고들 하잖아요. 유학하는 동안 저 역시 한국적인 게 가장 아름답다고 느꼈어요. 영국 대영박물관에서 우리나라 달항아리를 봤는데 그 특유의 일그러짐이 너무 아름다운 거예요. 매일 봐도 질리지 않는 이유가 바로 거기 있구나 싶더라고요. 그 일을 계기로 제 작업에 비정형의 요소를 많이 적용하게 됐어요.





Q. 채색한 작업이 거의 없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A. 유리의 가장 큰 매력은 투명성이라고 생각해서요. 색을 적게 쓰는 대신 본래 제 전공인 산업디자인 기술을 적용해 조약돌, 목재 등 다른 소재를 덧붙이는 방식으로 변화를 주고 있어요. 재료 자체를 바꾸기보다는 각각의 재료가 본연의 매력을 간직한 채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저는 더 보기 좋더라고요. 색을 더하더라도 시중에 있는 안료나 색유리를 쓰기보다는 금, 은, 동 같은 소재를 녹여서 저만의 색을 만드는 편이에요.

Q. 잔, 접시 같은 식기부터 화병, 조명, 모빌까지 다양한 용도의 물건을 만들고 있어요. 작업에 있어서 실용성을 중시하는 편인가요?
A. 원래 있는 표현은 아니지만, 사용자의 취향에 따라 용도가 바뀐다는 점에서 저는 제 작업을 ‘실용 아트’라고 정의하고 있어요. 제가 화병이라고 생각하고 만든 물건을 누군가는 디퓨저 보틀로, 누군가는 장식용 오브제로 쓰기도 하니까요. 작품의 실제적인 쓸모를 떠나, 저는 그런 현상 자체가 되게 중요하다고 봐요

Q. 뮤트뮤즈의 중요한 아이덴티티 중 하나가 아트워크 컬래버레이션인데요.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바탕으로 한 뮤트뮤즈의 아트워크 스트랩 역시 사용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작업이에요. 단순히 자기 마음에 드는 패턴이 들어간 제품으로 소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는 작가의 사인을 받아 보관하는 작품으로 여기기도 하죠.
A. 맞아요. 가방처럼 일상적인 물건도 누군가에게는 예술이 될 수 있어요. (뮤트뮤즈의 아뮤즈백을 들어 보이며) 예컨대 이걸 디자인한 사람은 분명 자기만의 소신을 갖고 만들었을 거예요. 이렇듯 고심해서 만든 물건이 작가와의 협업을 통해 가치를 더하고, 그 가치를 알아보는 소비자가 생긴다면 그게 곧 ‘제품’이 ‘예술’이 되는 과정일 거고요. 단지 우리가 평소 몸에 지니고 다니는 물건이라 자각하지 못할 뿐이죠.

Q. 언젠가부터 공예가 생활에서 밀려나고 그 자리에 공산품이 들어섰어요. 그래서인지 현대의 공예는 일상적인 제품이라기보다 전시장에 놓인 작품처럼 여겨지기도 하는데요.
A. 제 작품을 구입한 컬렉터가 자신이 사는 런던 집에 저를 초대한 적이 있어요. 가보니 집이 완전 갤러리더라고요. 벽에 걸린 그림이며 식탁에 놓인 그릇까지 모든 물건이 작가의 작품이었어요. 자기가 수집한 작품을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죠. 그때부터 저도 제 작품을 일상적으로 사용하게 된 것 같아요. 특히 유리는 자주 써야 깨끗함을 유지할 수 있거든요. 제 작품을 구입하는 분들에게도 아끼지 말고 그냥 막 쓰라고 권해드려요.





Q. 유리를 입으로 불어 모양을 만드는 전통 블로잉 기법을 고수하고 있어요. 현대의 공예는 수작업과 기계 모두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요.
A. 블로잉 작업은 애초에 기계가 끼어들 여지가 별로 없어요. 기계의 역할이 중요하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사람인 저를 도와주는 도구일 뿐이죠. 그래서 저는 기계를 사람의 장기에 빗대어 말하길 좋아해요. 유리를 녹여주는 ‘용해로’는 심장, 굳은 유리를 다시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글로리 홀’은 폐, 뜨거운 유리를 천천히 식혀주는 ‘서냉로’는 자궁이라고 부르는 식으로요.

Q. 유리를 굽는 가마만 1톤이 넘는다고 들었어요. 게다가 1,250℃의 고온을 1년 내내 유지해야 하고요. 여러모로 터프한 작업인데 체력적으로 힘들지는 않나요?
A.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실은 나이가 들수록 체력의 한계를 실감하고 있어요. 한여름에 뜨거운 온도를 견디는 것도 쉽지 않고요. 아마 지옥불에서 제일 오래 버티는 사람은 유리공예 작가가 아닐까...(웃음)

Q. 인스타그램에 자신을 양’토르’라고 표현한 걸 보고 웃음이 났어요. 벌겋게 부푼 유리를 쇠파이프에 감아 올리는 모습이 정말 토르가 따로 없던데요.
A. 제 주변에는 반대로 ‘여성미 뿜뿜’인 남성 작업자도 많은데요. 유리공예처럼 성별이 한쪽으로 치우친 분야에서는 그런 중성적인 면이 오히려 남다른 매력으로 작용하는 것 같아요. 예전에 체코 유리공예 전시를 보러 갔다가 한 거장 작가가 이런 글을 남긴 걸 본 적이 있어요. “유리공예를 하려면 힘부터 길러라”. 그는 단순히 체력적인 힘을 말했을 수도 있지만 저는 그 힘이 곧 ‘자기만이 갖고 있는 성향’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실제로 유리공예를 하면서 남성 작가들에게는 없는 어떤 여성성이 저에게 있다고 느꼈거든요. 덕분에 이 분야에서 남들보다 좀 더 일찍 튈 수 있었고요.

Q. 작업 과정이 험해서일까요? 유리공예로 유명한 베니스 무라노 섬에 방문한 적이 있는데 장인들 대부분이 남자였어요.
A. 우리나라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한국에 블로잉 작업을 하는 작가가 열 분 정도 계신데 그중 자기 작업실을 갖고 일하는 여성 작가는 제가 유일하거든요. 워낙 체력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보니 여자들이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죠. 저 역시 물리적으로 힘에 부칠 땐 남성 작가들과 협업을 합니다. 물론 마무리는 제 손으로 하고요. 그럴 때 오히려 더 큰 시너지가 나기도 해요. 갈수록 직업과 성별을 논하는 일이 점점 무의미해지고 있으니 이럴 때일수록 ‘Girls go everywhere’라고 생각해요.
Q. ‘Girls go everywhere’를 당신에게 대입하면 어떨까요? 당신이 ‘어디든 갈 수 있다’고 상상한다면요?
A. 여러 분야의 작가들이 한 공간에서 협업하는 환경을 만들고 싶어요. 실제로 금속, 목공, 도자, 요리 등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이 유리공예를 배우러 찾아오거든요. 그들이 이곳에서 각자의 기술을 공유하며 영감을 주고받으면 어떨까 해요. 그럼 굉장히 멋진 결과물이 나올 것 같아요. 제 작업실이 ‘모와니 글라스 스튜디오’를 넘어선 ‘모와니 스튜디오’가 되는 거죠. 일종의 레지던시처럼요.






Text / Bora Kang 강보라
Photographer / Siyoung Song 송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