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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좀 더 평등한 삶을 위한 집 짓기건축가 송멜로디

가사노동은 왜 경제적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할까? 주방과 세탁실은 꼭 집안 깊숙이 들어가 있어야 할까? 뉴욕대에서 인류학을, 예일대 건축대학원에서 코리빙 건축을 공부한 송멜로디는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집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말한다. 현재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과 함께 디자인 및 부동산 개발 스튜디오 ‘보다bo-daa’를 이끌고 있는 그와 집과 여성을 주제로 스타카토 같은 대화를 나누었다.





Q. 송멜로디Melody Song는 본명인가요? 편견이겠지만 ‘건축가스러운’ 이름은 아니라서요. 그보다는 뮤지션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이죠.(웃음)
A. 아버지가 작곡가이신데 비지스를 굉장히 좋아하세요. 비지스 노래 중에 ‘멜로디 페어Melody fair’라는 곡이 있거든요. 1971년에 나온 <작은 사랑의 멜로디>라는 영화 주제곡인데 거기 나오는 여자 주인공 이름이 멜로디예요. 아이들의 순수한 사랑을 그린 영화라, 제가 그렇게 자라길 바라신 것 같아요.(웃음)

Q. 20대의 나이에 국내 대형 건설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탁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어요. ‘뉴욕대에서 인류학을 전공한 90년생 건축가’라는 매력적인 수식으로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고요.
A. 솔직히 말하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제가 다루고 있는 코리빙이 지금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는 주제라서요. 때마침 시기가 잘 맞았던 거죠. 대기업의 융통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더 이슈가 된 면도 있고요.

Q. 공동 주거 공간을 추구하는 코리빙co-living 건축에 집중하고 있어요. 코리빙이 정확히 뭔가요?
A. ‘Community Living’의 약자인데요. 보통은 공유 라운지나 커뮤니티 키친, 코워킹 스페이스 등의 공용 공간을 갖춘 주거 형태를 뜻해요. 커뮤니티를 양성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나 이벤트를 실질적으로 운영해야지만 진정한 코리빙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요.

Q. 그렇다면 당신이 생각하는 코리빙은요?
A. 저에게 코리빙은 특정 스타일의 건축이라기보다는 삶의 형태에 가까워요. 주어진 집, 주어진 역할에서 벗어나 어떤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지 스스로 선택한다는 점에서요. 나아가 코리빙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기도 해요. 한 예로 요즘 사람들은 집에서 굉장히 산만하게 시간을 보내잖아요. 요리도 하고, 넷플릭스도 보고, 인스타그램도 하고요. 그렇게 모든 걸 한 공간에서 처리하다 보면 공과 사의 경계가 흐릿해져요. 특히 가사노동이 그렇죠. 청소나 육아가 제대로 된 가치 평가를 받지 못하는 건 그게 노동처럼 보이지 않아서예요. 어떻게 하면 이를 공간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일과 휴식을 잘 분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물음 또한 코리빙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어요.





Q. 주택의 형태가 성평등에 영향을 미친다는 관점이 흥미로워요. 저도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지만, 집의 구조과 가사노동의 입지를 연결 지어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거든요.
A. 당연해요. 우리는 오래 전부터 이런 착취 구조에 익숙해져 왔으니까요.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인간의 공간을 크게 ‘폴리스polis’와 ‘오이코스oikos’로 구분했어요. 폴리스가 정치, 경제, 사회를 논하는 공간이었다면 오이코스는 생식(生殖)을 위한 공간, 즉 폴리스에 필요한 모든 경제활동을 담당하는 공간이었죠. 전자가 시민권을 가진 남자들의 공간이라면, 후자는 여자와 노예들의 공간으로 중심에서 밀려났어요. 문제는 이런 분리가 오늘날의 집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는 거예요. 거실이나 응접실처럼 사람을 마주하는 공적 공간은 전면에 드러나 있는 반면, 부엌이나 아이를 돌보는 사적 공간은 뒤편에 숨겨져 있는 식으로요.

Q. 듣다 보니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집에서부터 얽매여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남성과 여성의 일을 구분하던 시절의 공간적 인식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셈이니까요. 당신이 설계한 공유주택 ‘트리하우스’에는 가사 서비스가 포함되어있다고 들었는데 맞나요?
A. 네, 하지만 그건 완벽한 대안이라고 할 수 없어요. 가사노동을 서비스화하려는 움직임은 심지어 19세기 말에도 있었던 걸요.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가사노동에 대한 경제적 가치가 올라가야 해요. 그러려면 일단 가사노동을 공적인 공간으로 끌어낼 필요가 있어요. 주방과 세탁실을 공용공간으로 만든다든가. 무엇이든 여럿이 함께 하면 그 이상의 가치가 생기기 마련이니까요.

Q. 세계적인 건축가들을 떠올리면 대부분 남자예요. 건축계에도 ‘유리 천장’이 존재하나요?
A. 동료들끼리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있어요, 우리는 너무 작아서 머리가 천장에 닿지도 않는다고요.(웃음) 모든 분야의 여자들이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고 생각해요.





Q. <뉴욕타임즈>에서 건축계의 성차별을 지적한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자하 하디드 외에 당신이 이름을 알고 있는 여성 건축가가 얼마나 되나?’라는 물음이었죠.
A. 유명 여성 건축가가 드문 건 미디어의 영향이 커요. 미디어에서는 프랭크 게리 같은 스타 건축가만 조명하니까요. 알고 보면 건축계에도 대단한 여성 건축가가 많거든요. 제가 가르침을 받은 <위대한 가정 혁명>의 저자 돌로레스 헤이든 교수도 그렇고, 지금 예일대 건축대학 학장인 데보라 버크도 여성 건축가세요. 미디어에서 이들을 더 자주 조명한다면 사람들의 인식도 바뀌지 않을까요?

Q. 곧 싱가포르로 떠난다고요. 당신의 주 활동무대는 어디인가요?
A. 뉴욕과 한국, 동남아시아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좀 더 통합적인 환경을 만들고 싶어서, 동료들과 함께 뉴욕에 새로운 공간을 알아보는 중이고요. 곧 싱가포르에서 경영학 수업을 들을 예정인데 싱가포르는 그야말로 미국과 아시아의 허브 같은 곳이라 벌써부터 기대가 돼요.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게 될 지요.

Q. ‘Girls go everywhere’를 당신에게 대입하면 어떨까요? 당신이 ‘어디든 갈 수 있다’고 상상한다면요?
A.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보면 여행자가 55개의 도시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는데요. 실은 모두 같은 도시에 대한 이야기예요. 만약 제가 어디든 갈 수 있다면, 도시에서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물질적인, 더불어 사회적인 영역을 관찰하고 그에 대해 질문하고 싶습니다. 우리 눈에 가장 보이지 않는 곳이 실은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곳이거든요.






Text / Bora Kang 강보라
Photographer / Siyoung Song 송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