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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ey

CURIOSITÉS

 

2. Journey

여행은 새로운 것을 향한 동경과 열망, 호기심과 기대가 응축된 21세기 최고의 도락이다. 모험, 탐험, 관광, 여정... 어떤 이름으로 부르든, 지금 우리가 그토록 그리워하는 그것.


Kimi&12 <Journey>, Artwork for MUTEMUSE, 2018

#1 일시 정지

A Temporary Pause

지난해 이 계절, 공항들은 24시간 깨어있었다.

‘ICN', 'JFK', 'LHR'... 컨베이어벨트는 서로 다른 공항코드가 찍힌 수화물들을 분주하게 토해냈다. 캐리어를 굴리며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 분 단위로 정보를 갱신하는 전광판들. 낯선 장소를 향한 흥분과 기대감이 공기를 가득 채웠다. 좁은 비행기 좌석의 불편을 견디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도착한 여행지에서 우리는 나라마다 다른 살갗을 맞대는 다양한 인사법으로 이국의 사람들과 온기를 나누었고, 화려한 건축물 앞에 서서 더욱 더 화사한 미소를 뽐내며 기념 사진을 남겼다. 

이탈리아 베로나에는 첫사랑을 이루어 준다는 줄리엣 동상의 오른쪽 가슴이, 뉴욕 월 스트리트에서는 만지기만 해도 부와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황소 동상이 사람들의 손길을 쉴 새 없이 받아내고 있었다. 온 도시를 으깬 토마토의 진홍빛으로 물들이는 스페인의 라 토마티나, 화려한 가면과 번쩍이는 코스튬을 입은 사람들이 마르코 광장을 빼곡히 채우는 베네치아의 카니발, 전 세계의 자유로운 음악 영혼들이 불나방처럼 모여드는 글래스톤베리 록 페스티벌… 여행은 이토록 진부하지만 아름다운 순간들로 채워지곤 했다.  

낯선 언어와 길 사이를 헤매며 누리던 묘한 해방감, 혀끝을 깨우는 생경한 맛의 향연, 모르는 사람과 우연히 사랑에 빠지던 선물 같은 시간. 조금은 부끄럽거나 두려웠지만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 눈 딱 감고 감행했던 그 모든 모험의 순간들을 다시 한 번 만나고 싶다.

나의 마지막 여행을 떠올려본다. 지금 우리는 그 모든 추억들을 숨겨둔 비스킷처럼 야금야금 음미하는 중이다. 들뜬 마음으로 붐비는 공항에 다시 발을 내딛는 순간을, 사람들과 거리낌 없이 볼을 부비고 활짝 핀 미소를 사진에 담아낼 날을 기대하면서.

Written by - Michelle Park / Edited by - Noelle Yang

연관 제품 : Journey 아트워크 스트랩


Marco Polo <The Travels of Marco Polo> Bibliothèque Nationale, Paris 1958

#2 마르코, 폴로!

Marco, Polo!

마르코 폴로. 유럽인에게 동방세계를 최초로 소개했다고 알려진 역사적 인물이지만, 당시에는 희대의 거짓말쟁이 취급을 받았던 베니스의 상인.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은 그가 아버지와 삼촌을 따라 중국 원나라를 비롯한 아시아로 여행을 갔던 이야기를 묶은 것으로, 훗날 세계 지도 작성의 중요한 참고 문헌이자 14~15세기 유럽 국왕들의 필독서로 기능했다. 진위 여부를 떠나 ‘동양’이라는 낯설고 생경한 미지의 세계를 생생하고 자세하게 기록했다는 점에서 엄청난 화제를 뿌렸다.

낯선 문물에 대한 공포와 편견 탓에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는 늘 의혹의 대상이었다. 그가 보았다는 ‘입이 엄청나게 큰 무섭고 커다란 뱀(악어)’, ‘유니콘(코뿔소)’, ‘얼룩무늬 사자(호랑이)’는 당시 서양인들에게 상상 속 동물이나 다름없었고, ‘나무보다 잘 타는 신비한 검은 돌(석탄)’ 역시 연금술 뺨치는 허황된 이야기로 들렸을 것이다. 그렇게 이 위대한 탐험가는 평생동안 욕을 먹고, 죽기 직전까지 가족으로부터 ‘거짓을 고백하라’는 압박을 받았다. (물론 그의 유언은 잘 알려진대로, “난 내가 본 것의 절반도 말하지 않았다” 이다.)

마르코 폴로를 비롯한 수많은 여행자와 탐험가들이 이처럼 ‘믿을 수 없는’ 고난을 감수하며 세계의 구석구석을 발견해둔 덕분에 인류는 비로소 ‘여행하는 자,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로 진화할 수 있었다. 그토록 천대받던 직업인 상인들의 ‘여행’이 이제 현대인이 가장 탐닉하는 엔터테인먼트가 되리라는 것을, ‘믿기 힘든’ 이야기일수록 환영받으리란 것을 마르코 폴로는 알았을까?

Written by - Michelle Park / Edited by - Noelle Yang


Bruce Conner <Suitcase> 1961-63

#3 여행 가방

Suitcase

한 자리에 오래 머무른 사물에는 시간이 남긴 고유의 흔적이 쌓인다. 소원 바위에 핀 이끼처럼, 혹은 옛 학교 담벼락에 자라난 담쟁이덩굴처럼.

바위나 담벼락은 제 자리를 오래 지키는 것으로 미덕을 쌓는다지만, 이동의 운명을 타고난 여행 가방이라면 어떨까? 이국의 땅을 쉴 새 없이 구르며 수하물 스티커를 덕지덕지 붙이고 돌아와, 벽장에서 잠시 숨을 돌렸다가 또다시 새로운 여행을 떠나기를 반복하는 것이야말로 세상 모든 여행 가방들의 꿈이자 본분일 것이다.

그래야 마땅한 여행 가방이, 돌아다니기는커녕 17세기의 플랑드르 정물화처럼 영원히 박제되었다. 심지어 열 수도 없다. 흘러내린 촛농이 떠나지 못한 여행만큼 겹겹이 쌓여 끝내 가방 손잡이를 뒤덮고 열림 장치까지 봉해버린 것이다. 브루스 코너의 <여행 가방(Suitcase, 1961-63)>은 갤러리와 박물관에서 영구히 생을 마감하는 예술 작품의 운명을 은유한다. 이동해야 마땅한 사물에 정반대의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현대미술 작품의 물리적 부동성을 역설한 것이다.

온 인류가 발이 묶인 지금, 우리에게 이 작품은 또다른 메타포로 다가온다. 코너의 <여행 가방>은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가방이 아닌 가구로 벽장 깊이 박혀 있는 오늘날의 여행 가방을 연상케 한다. 동시에 언젠가 기지개를 켜고 훌쩍 떠나길 기다리는 가방이기도 하다. 묵은 촛농을 털어내고, 다시 새로운 여행길에 오르길 꿈꾸는, 우리 모두의 여행 가방 말이다.

Written by - Noelle Yang


Jean-Pierre Lorand <Rêve de Voyage> 2019

#4 여행의 성립

Dreaming of a Journey

여행은 태피스트리처럼 복잡하게 짜인 욕망의 직물이다. 낯선 세계에 대한 호기심, 일상으로부터의 일탈, 이국적인 자극, 낭만적인 우연과 모험, 이동수단의 감각적인 즐거움…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을 촘촘히 엮어 한 편의 여정을 완성하고 ‘여행’이라 이름 붙인다. 그러므로, 단순히 물리적으로 비행기에 몸을 싣고 머나먼 타지 땅을 밟는 것만이 여행의 필수조건은 아닐 것이다.

이런 여행들이 있다. 새벽녘의 고요한 명상으로 내면의 우주를 항해하거나, 영화와 책 속에 펼쳐지는 미지의 삶 속으로 푹 빠져들기. 처음 가본 곳의 창 밖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거나, 한껏 차려입고 혼자 찾아간 미술관에서 보내는 낯선 하루. 어떤 이는 그저 달리는 버스의 맨 앞자리나 자전거에 몸을 싣는 것만으로도 하루치의 해방감을 얻고, 건조하고 깨끗한 냄새로 북적이는 공항으로의 드라이브와 커피 한 잔만으로도 비행의 설렘을 느낀다. 오래된 사진과 일기는 어릴 적 할머니가 들려주던 옛날이야기처럼 마법같은 시간 여행을 선사하기도 한다. 처음 키워보는 식물이 매일 조금씩 자라는 모습을 뿌듯하게 바라보는 일,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이의 꼭 쥔 손을 초조하게 지켜보는 일. 이 모든 것이 여정의 기쁨이자 여행의 다른 이름이다.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여행의 씨실과 날실을 골라 일상과 일상의 틈새를 한 올씩 촘촘히 엮어보자. 스펙터클한 꿈으로 안내하는 한 시간의 낮잠, 이국적인 요리를 음미하는 30분, 또는 좋아하는 뮤지션의 신곡을 듣는 단 3분이라도. 땅에 붙은 마음을 잠깐이라도 하늘로 띄울 수만 있다면 분명, 당신의 여행은 성립한다.

Written by - Noelle Yang


<Cy Twombly’s studio in Rome> Vogue 1966

#5 집, 여행의 제자리

Home

‘집’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포근하고 익숙한 집 냄새가 코 끝을 스친다. 집이 내는 사소한 소음와 가구들의 촉감들도 금세 떠오른다. 문 경첩의 마찰이 만들어내는 작은 소리, 내 몸의 굴곡에 맞게 적당히 꺼진 침대와 소파. 집은 그 어떤 안정제보다 강력한 힘으로 우리의 심신을 무방비 상태로 이끈다.

집, 여행의 시작과 끝. 여행을 뜻하는 여러 단어 중 ‘Tour’의 어원은 그리스어로 ‘원을 그리는 도구(tornos)’이다. 여행은 결국 시간과 공간으로 그리는 하나의 동그라미인 셈이다. 집은 떠났다 돌아온 모든 존재의 원점이다.

흔히, 여행이 아름다운 이유는 돌아올 곳이 있기 때문이라고들 말한다. 그렇지 않은 여행은 그저 불안하게 떠도는 방랑일 뿐이라고. 깔끔하고 무결한 호텔 룸의 매혹과 설렘은, 살 냄새가 밴 이불이 아무렇게 펼쳐진 내 방의 조건 없는 편안함 덕분에 의미를 갖는다.

그렇기에 여행자들은 오감을 건드리는 타지의 달콤함을 잔뜩 들이켜고도 마지막에는 자신이 가장 깊이 잠들 수 있는 이곳으로 돌아와 짐을 풀고 몸을 누인다. 여행의 원점, 모든 게 제자리에 있는 곳이자 내 자리가 있는 곳, 체크아웃이 필요없는 나의 집으로.

Written by - Noelle Yang

Directed by MICHELLE PARK, NOELLE YANG
Written by NOELLE YANG, MICHELLE PARK
Edited by NOELLE YANG, BORA KANG
Translation by MICHELLE PARK(eng)
Designed by JUNSEON YU
Cover Illustration by BAÉ

Produced by STUDIO PARENTHÈ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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